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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아몬드 책 추천, 육아휴직 아빠가 다시 배운 공감의 온도
    페이지 (도서) 2026. 4. 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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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휴직 중인 30대 아빠가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를 읽고 쓴 진솔한 독서 기록입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윤재의 이야기가 연년생 육아 속에서 무뎌져버린 아빠의 감정을 어떻게 깨웠는지, 공감이라는 단어의 진짜 무게를 되짚어 본 책 추천 리뷰입니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책 한 권

    큰아이가 거실 책장을 통째로 뒤집어엎은 건 어느 흐린 수요일 오후였다. 24개월짜리가 도대체 어디서 그런 무시무시한 힘이 나오는지, 낮은 칸의 책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져 아이 발치에 산처럼 쌓였다. 작은아이를 한쪽 팔에 축 안은 채 한 손으로 부랴부랴 책을 주워 담던 중 손바닥에 유난히 얇고 가벼운 한 권이 걸렸다. 연두색 표지에 아몬드 알갱이를 닮은 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 아내가 임신 중에 읽겠다며 사뒀다가 결국 손도 못 대고 방치한 책이었다.

    아이들이 기적처럼 동시에 낮잠에 들어준 그날 오후, 텅 빈 거실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펼쳤다. 요즘 긴 호흡의 글을 읽을 집중력 따위 진작 소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장부터 이상했다. 주인공 윤재라는 소년의 목소리가 돌처럼 차갑고 건조한데, 그 건조함이 오히려 내 마른 가슴에 선명한 금을 내며 파고들었다. 결국 아이들이 깨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나는 반도 넘게 읽어버리고 말았다. 밤이 깊어 나머지를 마저 해치운 뒤 한참을 멍한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당신은 감정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온전히 느낀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는가.

    감정이라는 근육이 닳아버린 시간

    손원평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뇌 속 편도체가 또래보다 현저히 작다. 의학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 불리는 증상이다. 공포, 분노, 슬픔, 기쁨. 사람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의 파도가 이 소년의 내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울어도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짓지 못한다. 소설 아몬드는 이 기묘하고 쓸쓸한 결핍을 가진 소년이 세상과 부딪히며 감정의 언어를 더듬더듬 배워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따라간다.

    이 설정을 따라가다 나는 불편한 자기 인식과 마주했다. 연년생 육아가 반년을 넘어가면서 내 감정은 눈에 띄게 무뎌져 있었다. 갓난아이 시절 큰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발음했을 때 눈물을 펑펑 쏟았다. 뒤집기에 성공한 날에는 아내와 손을 잡고 거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의 새로운 성장을 보아도 잘했네 하고 건조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게 고작이 되어버렸다. 작은아이가 배밀이를 시작해도 고개만 끄덕이고, 큰아이가 처음으로 동생에게 장난감을 나눠줘도 마음의 수면이 고요하기만 했다. 윤재처럼 뇌의 물리적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육아라는 무한 반복의 참호 안에서 감정의 볼륨을 스스로 바닥까지 낮춰버린 셈이었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감각의 스위치를 하나둘 내려놓은 건지, 아니면 그냥 지쳐서 꺼져버린 건지 솔직히 구분이 되질 않았다.

    폭력처럼 쏟아지는 세상 속 한 줌의 온기

    소설 중반부에 곤이라는 거친 소년이 윤재의 세계에 불쑥 끼어든다. 곤은 윤재와 정반대로 감정이 지나치게 격렬한 아이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부서진다. 이 정반대의 두 소년이 서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과정에서 손원평 작가는 감정이란 결코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조용히 던진다. 윤재가 곤의 분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무언가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낯선 감각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그 대목에서 나는 책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빠져 페이지가 저절로 접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이 메말라버린 어른에게 날것의 감각을 끊임없이 수혈해 주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24개월 큰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웃고 울고 화내고 토라진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까르르 웃어대고, 이유 모를 서러움에 바닥에 누워 대성통곡을 한다.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종잡을 수 없고 지치는 행위의 연속이지만, 사실 그건 여과 장치 없이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살아 있음이다. 작은아이가 내 검지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 잇몸에 대고 우물우물 씹을 때 전해지는 말랑한 압력. 그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작은 접촉이 소설 속 윤재의 편도체 대신 나의 무뎌진 감정 근육에 가느다란 전류를 우습게도 쏘아주고 있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소설 아몬드에서 윤재의 할머니는 손자에게 감정 카드를 만들어 주며 상황별로 어떤 감정이 적절한지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장례식장에서는 슬퍼해야 하고, 생일 파티에서는 웃어야 한다고. 이것은 느끼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는다. 형식이라도 먼저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마음이 따라올 거라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나는 이 할머니의 고집스러운 사랑이 육아의 본질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그림책을 열일곱 번째 읽어주고,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 아이에게 다시 주워 쥐어주는 일. 그 막막한 반복의 끝에서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내 입에 쑥 넣어준다. 그 순간 나의 꺼져 있던 감정 스위치가 찰칵 하고 올라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아이가 내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거다. 손원평 작가는 윤재를 통해 괴물과 사람의 경계는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내미는 손의 무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완벽하게 느끼지 못해도, 서툴게라도 다가가려는 발걸음 자체가 이미 사람으로 살아가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육아로 감각이 닳아버린 나를 향한 조용한 문장 같아서 한참 동안 같은 페이지를 놓지 못했다.

    작고 단단한 씨앗 하나를 심은 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소파 팔걸이 위에 엎어놓았을 때 안방에서 작은아이의 잠꼬대 같은 가느다란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일어나 안아 올리니 아이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금세 다시 고른 숨을 내쉬었다. 그 6킬로그램짜리 체온 덩어리를 안고 있는데 소설 속 윤재가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현상을 자기 뺨 위에서 발견하던 장면이 겹쳐왔다. 느끼지 못한다고 여겼던 소년이 어느 날 문득 자기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걸 인지하는 그 장면. 극적이지 않아서 더 가슴이 아팠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 날 아침, 큰아이가 눈을 비비며 나를 올려다보고 아빠 하고 부르는데 평소와 똑같은 그 두 글자가 유독 다르게 가슴에 닿았다. 대단한 변화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차이다. 하지만 바닥까지 내려갔던 감정의 볼륨이 한 칸 올라간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감정이 바닥나버린 것 같은 모든 어른들에게 손원평 작가의 책 아몬드를 조용히 권해본다. 매일이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고, 웃어야 할 자리에서도 표정이 굳어버리는 나날을 보내는 사람에게. 혹은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그 온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문득 낯설어진 밤을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 이 얇은 소설 한 권이 틀림없이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을 다시 희미하게나마 깨워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이 책이 건드린 마음의 결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곁에 두고 함께 읽기 좋은 작품 두 권을 마지막으로 적어둔다. 타인의 아픔에 무심했던 한 소년이 상처 입은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용기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R.J. 팔라시오의 소설 원더를 먼저 이어 읽기를 권한다. 이와 함께 서로 다른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말 대신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정세랑 작가의 소설 피프티 피플도 함께 펼쳐본다면, 메마른 일상의 틈새마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따뜻한 무게가 조금씩 침투해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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